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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리뷰 감독판

2. 에어 KX-R, MX-R Twenty, 고 찰스 한센을 추억하며

오디오 세상이 아무리 올인원에 라이프 스타일로 바뀌었어도 애호가 가슴 한편에는 일종의 로망처럼 자리잡은 게 있다. 평생 쓸 만한 프리앰프 한 대와 좌우 스피커를 각각 울리는 모노블록 파워앰프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냥 인티앰프 한 대, 아니면 프리앰프에 스테레오 파워앰프 조합으로 ‘버티는’ 경우도 많지만, 그 속내에는 3덩이 조합에 대한 갈증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최근 시청한 미국 에어 어쿠스틱스(Ayre Acoustics)의 KX-R Twenty 프리앰프, MX-R Twenty 모노블록 파워앰프는 필자에게도 이런 갈증이 숨어있었음을 깨닫게 해줬다. DAC 겸 프리앰프를 붙박이로 놓고, 300B 싱글 진공관 파워앰프와 솔리드 파워앰프 2대를 번갈아가며 운용하면서 나름 만족하며 지내왔는데, 이번 에어 두 형제를 접하고선 다시 들끓는 소유욕에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특히 프리앰프의 경우, 아주 양질의 하이엔드 제품이 아니면 없는 게 낫다는 판단으로 진공관 프리앰프를 처분했던 터라 이번 KX-R 트웬티는 더욱 눈에 띄었다. 필자가 지난 2017년에 리뷰를 했던 KX-5 트웬티 프리앰프와도 여유있게 격차를 벌렸다. MX-R 트웬티 역시 VX-5 트웬티 스테레오 파워앰프와 레벨이 달랐다. 설립자 찰스 한센(Charles Hansen)은 2017년 세상을 떠났지만, 에어의 플래그십 앰프들은 지금도 빛을 발하고 있다.

 


에어 어쿠스틱스와 Twenty 시리즈

​에어 어쿠스틱스는 찰스 한센이 1993년 미국 콜로라도주 볼더(Boulder)에 설립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찰스 한센은 앞서 1986년 친구 밥 그럽(Bop Grupp)과 함께 스피커 제작사 아발론(Avalon Acoustics)을 설립했다. 이처럼 하이엔드 스피커 메이커와 앰프 메이커를 잇따라 설립한 경우는 흔치 않다. 이후 아발론은 1989년 닐 파텔(Neil Patel)이 인수했다.

​찰스 한센은 에어 설립 후 동상(common mode)으로 끼어드는 노이즈와 위상 오차를 제거하기 위해 디스크리트 풀 밸런스 설계의 트랜지스터 앰프를 선택했다. 또한 네거티브 피드백(Negative Feedback)을 추방시켰는데, 이는 출력값을 다시 입력값과 비교해 원 시그널과 다른 부분을 ‘사후’ 제거하는 NFB의 원리상 음질 열화는 피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에어 어쿠스틱스의 시그니처는 찰스 한센이 독자 개발한 4가지 설계 및 회로로 요약된다. EquiLock(이퀴록), VGT(Variable Gain Transconductance), Double Diamond Buffer(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AyreLock(에어록)이다. 이퀴록과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는 각각 앰프의 전압 증폭단과 전류 증폭단(출력단)에 투입된 독자적인 방식의 증폭 회로이고, VGT는 게인과 연동되는 볼륨 조절 시스템, 에어록은 파워 서플라이에 투입된 정전압 회로다. 이들에 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에어 어쿠스틱의 현행 라인업은 3가지로 구분된다. 2008년에 나온 플래그십 R 시리즈, 2013년에 나온 중견 5 시리즈, 그리고 지난해 출시된 엔트리 8 시리즈다. 그리고 R과 5 시리즈는 앞서 지난 2015년에 일제히 20주년 기념 모델 Twenty(트웬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됐다. 필자가 리뷰한 모델은 바로 이 트웬티 R 모델들이며, 위에서 말한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는 이 트웬티 모델들에만 투입됐다.

* 2008년 R 시리즈 : KX-R 프리앰프, MX-R 모노블록 파워앰프, VX-R 파워앰프
* 2013년 5 시리즈 : KX-5 프리앰프, VX-5 파워앰프, AX-5 인티앰프, QX-5 디지털 허브
* 2015년 Twenty 시리즈 : KX-R Twenty, MX-R Twenty, VX-R Twenty(이상 R 시리즈), KX-5 Twenty, VX-5 Twenty, QX-5 Twenty, AX-5 Twenty(이상 5 시리즈)
* 2019년 8 시리즈 : QX-8 디지털 허브, EX-8 인티앰프

모노블록 파워앰프 MX-R Twenty

 


​MX-R Twenty(트웬티)는 8옴에서 300W, 4옴에서 600W를 내는 대출력 솔리드 모노블록 파워앰프다. 다른 에어의 제품들과 마찬가지로 심플한 외관에 안길이가 더 긴 디자인(WHD 28cm x 9.5cm x 48cm)이 눈길을 끈다. 전면에는 정중앙에 온오프 버튼밖에 없다. 후면에는 AC 인렛단과 밸런스(XLR) 입력단 1개, 스피커 커넥터가 자리 잡았다. 입력 임피던스는 2M옴. 입력단자 양 옆에 보이는 단자는 에어 기기간 연결을 위한 것이다(AyreLink 커뮤니케이션 시스템). 무게는 23kg.

​MX-R 트웬티의 핵심은 1) 클래스 AB 증폭, 푸시풀 구동, 2) 디스크리트 풀 밸런스 설계, 3) 스피커를 드라이빙하는 전류 게인 출력단에 투입한 더블 다이아몬드(Double Diamond) 버퍼 회로, 4) 전압 게인(26dB)이 이뤄지는 전압 증폭단에 투입된 EquiLock(이퀴록) 증폭회로, 5) 리니어 파워서플라이에 투입된 AyreLock(에어록) 정전압 회로 등이다. 모든 에어 제품에 토로이달 트랜스 대신에 EI 트랜스를 투입하는 점도 특징인데, AC 전원 노이즈가 토로이달에 비해 더 작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부 사진을 보면 통 알루미늄을 절삭한 내부에 EI 트랜스 2개와 증폭 및 파워 서플라이 회로가 각각의 하우징에 수납된 점이 눈길을 끈다. 물론 트랜스의 전자기장 간섭을 막기 위해서다. 또한 평활 커패시터 등 파워 서플라이와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출력단, 전압 증폭단, 입력단이 모두 거울처럼 대칭 형태로 배치했다. 이는 MX-R 트웬티가 풀 밸런스 설계이기 때문에 플러스(+) 신호와 마이너스(-) 신호를 동일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우선 다이아몬드 버퍼(Diamond Buffer) 회로는 리처드 베이커(Richard Baker) 미국 MIT 교수가 1964년 특허 출원한 앰프 출력단의 전류 게인 회로. NPN(드라이빙)-PNP(출력)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한 쌍(그림 아래)과 PNP(드라이빙)-NPN(출력) 바이폴라 트랜지스터 한 쌍(그림 위)이 각각 푸시(push)와 풀(pull) 출력을 담당토록 한 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 4개의 트랜지스터가 서로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 다이아몬드를 닮았다고 해서 다이아몬드 버퍼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푸시 신호든 풀 신호든 드라이빙 트랜지스터와 출력 트랜지스터가 모두 에미터 팔로워(emitter follower) 형태로 연결되고, 출력 트랜지스터에서도 컬렉터(collector)가 아니라 에미터에서 최종 출력을 뽑아내는 점(전류증폭)이 특징이다. 한마디로, 드라이빙과 출력 모두 에미터 팔로워이기 때문에 마치 진공관의 캐소드 팔로워(cathode follower)처럼 전압 증폭은 안 이뤄지고 전류만 더 흘러 뒷단에 대한 구동력을 더 키우는 회로다.

​그러면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가 다른 푸시풀 회로에 비해 음질적으로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존 푸시풀 회로에는 출력 트랜지스터의 아이들링 전류를 제어하는 바이어스 회로가 있고, 이 바이어스 회로는 반드시 두 트랜지스터 사이에 공통 저항(에미터 저항)을 필요로 했다. 이 때문에 푸시 출력과 풀 출력이 미세하게 서로 다르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었는데,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는 에미터 저항을 비롯해 두 푸시/풀 회로 사이에 서로 공유되는 일체의 부품이 없어서 음악 신호를 더욱 완벽히 재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찰스 한센은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가 앞단인 전압 증폭 회로에 너무나 많은 부하(load)를 준다는 점, 그래서 파워 서플라이로부터 더 많은 전류를 뽑아와야 한다는 점, 이 때문에 결국 앰프에 열이 많이 발생하고 이는 앰프 전체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점이 문제라고 봤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드라이빙 + 출력’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앞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를 하나씩 더 붙였으니 이게 바로 더블 다이아몬드 회로다. 즉, PNP 드라이빙 트랜지스터 앞에 PNP를 하나 더, NPN 드라이빙 트랜지스터 앞에 NPN을 하나 더 붙인 것이다.

​찰스 한센은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기존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에서 두 트랜지스터의 게인이 각각 100이고, 스피커 임피던스가 4옴이라면, 전압 증폭단에 걸리는 부하는 40k옴(100 x 100 x 4옴)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드라이빙 트랜지스터를 하나 더 붙이면 전압 증폭단에 걸리는 부하는 4M옴(100 x 100 x 100 x 4옴)으로 대폭 '줄어든다'. 전압 증폭단 입장에서 보면 뒷단(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의 입력 임피던스가 4M옴이나 되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 없이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는 것(수정 그만큼 전류를 덜 뺏기는 것, 즉,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채택으로 발열량이 35%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에어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가 트웬티 모델들에 새로 투입된 것이라면, 에어록 정전압 회로는 기존 모델들에 있던 것을 개선했다. 에어록 회로는 오디오 증폭 회로가 더 많은 전류를 필요로 할 경우 파워 서플라이에서 더 많은 전류를 푸시(push)해주는 회로. 그런데 트웬티 모델이 되면서 기존 회로에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하나 더 투입시켜 오디오 회로가 반대로 전류를 덜 필요로 하면 그에 비례해 전류를 접지로 흘려보내게 했다. 마치 푸시풀 앰프처럼 파워 서플라이에도 풀(pull) 회로를 추가, 능동적인 정전압 회로를 완성시킨 것이다.

프리앰프 KX-R Twenty

 


KX-R Twenty는 풀 밸런스, 제로 피드백 설계의 솔리드 프리앰프. 통 알루미늄에서 절삭한 모노코크 섀시를 초정밀 CNC로 마감해 표면을 만져보면 매끄럽기가 장난이 아니다. 전면 패널에 붙은 두 노브의 돌리는 맛도 정숙하고 부드럽기가 거의 넘버 원 수준. 리모컨이 기본 제공되지만 이러한 손맛이 워낙 뛰어나 만약 이 제품을 쓰게 되면 일부러 노브를 돌릴 것 같다. 크기(WHD)는 43.8cm x 9.5cm x 29.2cm, 무게는 18kg.

​전면을 보면 가운데 디스플레이를 사이에 두고 왼쪽 노브는 입력 셀렉터, 오른쪽 노브는 볼륨 컨트롤을 담당하며, 각각의 양옆에 스탠바이 버튼과 뮤트 버튼이 달렸다. 입력단은 채널별로 밸런스 4개, 언밸런스 4개, 출력단은 채널별로 밸런스 2개가 마련됐다. 테이프 출력 단자(XLR)도 채널별로 2개씩 마련됐다. 철저히 밸런스 설계를 했기 때문에 언밸런스 출력이 없는 점이 특징. 파워앰프와 마찬가지로 에어 기기간 연결을 위한 AyreLink(에어링크) 단자 2개가 마련됐다.

입력 임피던스는 밸런스가 2M옴, 언밸런스가 1M옴이며, 밸런스 출력 임피던스는 300옴을 보인다. 주파수 응답 특성은 DC~250kHz. 소스 기기의 출력 레벨에 따라 게인을 1dB씩 최대 +6dB까지 설정할 수 있는데, 이는 소스 기기에 상관없이 일정 음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좌우 채널 밸런스도 1dB씩 최대 +3dB까지 조절할 수 있다. 좌우 채널 밸런스가 흐트러진 포노 카트리지 신호 입력 시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설계 디자인을 살펴보면, KX-R 트웬티는 파워앰프와 마찬가지로 전압 증폭단에 이퀴록 회로, 출력단에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리니어 파워 서플라이에 에어록 정전압 회로를 투입했다. 공개된 내부 사진을 보면 앞쪽 EI 트랜스를 중심으로 좌우 채널이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풀 밸런스 설계를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I 트랜스, 파워서플라이, 증폭단, 입력단, 볼륨단 등이 모두 각각의 하우징에 수납된 점도 눈길을 끈다.

KX-R 트웬티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VGT(Variabel Gain Transconductance)라고 이름 붙인 볼륨단. 말 그대로 볼륨을 줄이면 프리앰프의 게인(증폭률) 자체가 줄고, 볼륨을 높이면 게인이 늘어난다. 즉, 26dB로 게인이 고정된 파워앰프와 달리 볼륨 조절에 따라, 즉 변화되는 저항값에 따라 게인(V = I x R)이 달라지는 구조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게인은 에어의 이퀴록 전압 증폭단을 통해 얻어지는 전압 게인으로, 뒷단에 마련된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에서 확보되는 전류 게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게인 볼륨의 장점은 무엇일까. 기존 어테뉴에이터 방식은 입력신호를 ‘감쇄’시켜 볼륨을 줄이거나 키우는 방식. 어테뉴에이터가 마이너스(-) dB로 표시되는 이유다. 이에 비해 게인 볼륨 방식은 입력신호는 일단 100% 증폭회로로 들어오고 이후 증폭률(게인) 조절을 통해 볼륨을 조절한다. 이 같은 가변 게인 방식은 고정 게인에서 발생하는 (추가 볼륨 저항 조절에 따른) 임피던스 변동에 따른 주파수특성 열화 현상도 없다. 또한 증폭 단계에서 볼륨을 줄이면 시그널(S)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증폭률과 노이즈(N)만 줄어들기 때문에 ’신호대잡음’ 비율이 상승하는 효과까지 발생한다. 한마디로 신호에 비해 노이즈가 줄어드는 것이다.

KX-R 트웬티 내부 사진을 보면 후면에 톱니바퀴 모양으로 장착된 부품이 가변 게인의 핵심인 VGT 컨트롤러다. 자세히 살펴보면 각 채널당 2개씩(플러스, 마이너스) 마련된 가변 저항기(총 4개)를 앞에 달린 모터가 벨트로 동시에 구동시키는 형태이며, 가변 저항기는 앞 열과 뒷 열에 달린 저항들만의 조합으로 최종 저항값(즉 감쇄값)을 얻는 래더(ladder) 타입의 어테뉴에이터임을 알 수 있다. 에어에 따르면 수십 차례 음질 비교 테스트를 통해 미국 샬코(Shallco)의 은접점 로터리 스위치를 가변 저항기로 채택했다. 1dB씩 총 60스텝으로 작동한다.

​끝으로 지금까지 수차례 스쳐가듯 언급했던 이퀴록(EquiLock) 전압 증폭 회로를 살펴본다. 핵심은 전압 증폭을 담당하는 트랜지스터(BJT)의 부하(load)로 통상의 저항 대신 또다른 트랜지스터(BJT)를 투입했다는 것. 따라서 두 트랜지스터를 연이어 붙인 일종의 캐스코드(cascode) 연결인데, 찰스 한센이 이처럼 저항 대신 트랜지스터를 부하로 투입한 것은 저항 부하를 사용할 경우 트랜지스터의 출력 전류에 따라 트랜지스터 양단에 걸리는 전압이 계속해서 바뀌기 때문(V = I x R)이다.

​찰스 한센은 이렇게 증폭을 담당하는 트랜지스터의 전압이 요동을 치면 트랜스 컨덕턴스나 커패시턴스 값도 바뀌어 음질에 영향을 준다고 봤다. 이에 비해 저항 대신 트랜지스터를 부하로 투입하면 1) 출력 전류는 그대로 통과시키고(커런트 미러), 2) 앞단의 트랜지스터 양단에 걸리는 전압은 일정하게 유지시켜, 3) 커패시턴스 등 음질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게인을 확보하는 트랜지스터 양단에 걸리는 전압을 일정하게 유지한다고 해서 '이퀴록'이다. 트웬티 모델이 되면서 부하로 투입된 트랜지스터의 특성을 개선했다고 한다.

한편 이퀴록의 증폭 트랜지스터는 통상 투입되는 JFET 대신 바이폴라 트랜지스터(BJT)를 썼다. 찰스 한센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전압 증폭단의 경우 JFET이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보다 낫다는 것이 내 지론이었지만 MX-R 때부터 바이폴라 트랜지스터를 썼다. 소리가 더 좋았기 때문(I have some beliefs that approach religious fatith : FETs are better than bipolars. But, in parts of the circuit, bipolar devices sound better than FETs, so that's what we used)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시청

시청에는 린의 네트워크 플레이어 Klimax DS, B&W의 플래그십 스피커 800 D3를 동원했다. 800 D3는 1인치 다이아몬드 돔 트위터, 6인치 컨티늄 콘 미드레인지 유닛, 10인치 에어로포일 콘 우퍼 2발을 갖춘 3웨이, 4유닛 스피커로 공칭 임피던스는 8옴(최저 3옴), 감도는 90dB, 주파수 응답 특성은 15Hz~28kHz(+,-3dB)를 보인다. 음원은 룬(Roon)으로 코부즈(Qobuz)와 룬 코어 저장 음원을 들었다.

​정명화 - 성불사 주제에 의한 변주곡
한, 꿈, 그리움

​맑고 깨끗한 소리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웰메이드 프리앰프를 투입하면 첫 음에서 풍기는 공간감부터 달라진다. 또한 종소리의 끝음이 아주 오래 퍼지는 모습도 확연한데 이 역시 프리앰프의 공이다. 인티앰프나 DAC 직결의 파워앰프에서는 오로지 한 군데에서 게인이 확보되지만 프리앰프가 투입되면 그 게인을 나눠 확보, 좀 더 정보량의 순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에어 플래그십 프리, 모노파워로 듣는 지금은 해상력, 분해능, 레이어, 정숙도 모두 프리미어 리그급이다. 첼로는 윤곽선이 깨끗하면서도 둔중한 저역을 뿜어낸다. 특히 바닥을 긁던 저역이 갑자기 끊긴 순간에 찾아든 적막감은 거의 역대급이다. 그만큼 두 덩이 파워앰프가 800 D3 우퍼 2발을 확실히 제압(댐핑)하고 있다는 증거다. 전체적으로 정갈하고 말쑥하며 노이즈가 한 톨도 남지 않고 증발된 소리를 만끽했다.

​Lamb Of God - Ashes of the Wake
Ashes of the Wake

​처음 쏟아지는 드럼의 타격음이 예전 어렸을 적 충격으로 다가왔던 뻥튀기 소리 수준이다. 몇십 번이나 들었던 곡인데, 여지없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역시 이 파워감과 무게감은 웬만한 파워앰프로는 쉽게 얻어지거나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다. 파워앰프 MX-R 트웬티에만 좀 더 집중해보면, 굼뜨거나 허약하지 않으며 한 음 한 음을 또박또박 내주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잘 달리고 잘 멈춘다. 덕분에 시청실 바닥에는 800 D3가 뿜어낸 에너지들이 연리목처럼 휘어지고 굽이치는 것 같다. 재생음에서 색 번짐이나 혼탁함이 없는 것은 프리앰프 KX-R 트웬티의 공. 무대를 넓고 깊게 쓰는 것, 드럼 림 플레이가 마치 단독 샷처럼 잡히는 것도 이 프리앰프 덕분이다. 시험 삼아 볼륨을 높여봤는데 체감상 분해능이나 톤 밸런스가 흐트러지는 모습은 발견되지 않았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의 'Take The Power Back'은 모든 악기들을 뚫고 보컬 목소리가 잘 들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소리가 한꺼번에 들릴 수 있는지 감탄, 또 감탄했다.

​Norah Jones - Come Away With Me
Come Away With Me

​이 곡에서는 보컬과 각 악기들의 레이어감이 돋보였다. 피아노는 왼쪽 가운데, 드럼은 오른쪽 뒤에, 노라 존스는 이들보다 앞에 그리고 보다 높은 위치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확연하다. 이 정도로 공간감이나 높낮이 구분은 일도 아니라는 투다. 반주 악기들이 유난히, 거의 자글자글 수준으로 잘 들린다. 그만큼 소스 기기부터 스피커까지 이번 시스템의 노이즈 관리 능력이 대단하다는 뜻이다. 덕분에 순도와 선도가 높은 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난무한다. 너무 추켜세우는 것 같지만 프리앰프와 파워앰프가 에어의 이 모델들처럼 동시에 탐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소프트함과 강인함, 스무드와 터프를 모두 갖췄다. 하긴 우리가 평소에 듣는 자연음이 이런 것이다. 정미조의 '개여울'에서는 스튜디오 잔향음이 혼령처럼 꿈틀꿈틀 시청실을 배회했다. 색소폰 연주에서는 그 생생한 질감이 스피커로도 재연될 수 있음에 다시 한번 놀랐다. 오디오를 통한 재생음이 아니라, 그냥 오디션 현장, 라이브 현장에서 노래를 듣는 것 같았다.

​Maria Joao Pires, Augustin Dumay, Jian Wang
Brahms: Piano Trio No.1
Brahms Piano Trios Nos. 1&2

​예전 이 곡은 오디오가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의 음색과 질감, 그리고 녹음 공간(랑크비치 스튜디오)의 크기를 어느 정도나 재현해내는지 알기 위해 들었다. 하지만 에어의 프리, 파워가 버틴 이번 시스템에서는 첼로의 음들이 세로 방향으로, 바이올린의 음들이 가로 방향으로 필자에게 쏟아져 오는 모습을 거의 처음으로 느꼈다. 재생음이 실물 악기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증거이자, 녹음 정보를 그대로 토해낸다는 증좌다. 음표는 물론 숨어있는 쉼표까지 뭐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보인다. 범위를 아주 좁혀 말해보면, 피아노 3중주 감상에 이보다 더 나은 조합이 있을까 싶다. 소릿결이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점, 음수가 휑하지 않고 풍성한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이어 같은 앨범에 수록된 피아노 삼중주 2번을 들어보면, 무대 자체가 승강기처럼 위로 솟아올랐고 1번에 비해 훨씬 더 큰 공간에서 녹음이 이뤄진 점이 분명하다. 실제로 2번은 뮌헨음대 대강당에서 녹음됐다.

총평

​잘 생긴 앰프가 소리까지 좋으면 더 바랄 게 없다. 사실, 더블 다이아몬드 버퍼 회로, 가변 게인 VGT, 일종의 캐스코드 증폭 이퀴록, 에어 어쿠스틱 버전의 정전압 에어록 등 KX-R 트웬티와 MX-R 트웬티에 투입된 창의성 가득한 설계 디자인과 고급 부품들은 결국 '소리'를 위한 것이다. 여기에 그 비싼 가격표가 부끄럽지 않도록 섀시 마감과 외관, 그리고 노브 등의 조작감까지 신경을 썼으니 과연 하이엔드 브랜드의 플래그십이라 할 만하다. 예전 몇 차례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여했던 가수 오디션 현장에서 듣던 그 생생한 육성을 이번 시스템에서 만끽했다. 최소 한 달 정도 옆에 두고 이 음악, 저 음악 들어보면 이들의 깊은 속내까지 알 수 있으련만,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쉬울 뿐이다.

 

2020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