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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리뷰 감독판

3. 눈앞에 펼쳐진 역대급 사운드 쇼, 윌슨베네시 Eminence

영국의 윌슨 베네시(Wilson Benesch). 애호가들이라면 아마 대부분 아실 브랜드일 것이다. 카디널, 디스커버리 같은 스피커 뿐만 아니라 턴테이블과 톤암으로도 유명한 제작사다. 특히 우퍼 후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씨쓰루 디자인과 카본 소재의 아낌없는 사용이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만든 인데버와 디스커버리 2 스피커를 향후 구입 스피커 1순위로 꼽고 있다. 

 

바로 몇주 전 주말의 일이다. 우연찮게 들른 경기 용인시의 한 애호가 집에서 반가운 스피커를 만났다. 지난 2013년 등장해 얼마 전까지 윌슨 베네시의 플래그십을 차지했던 카디널(Cardinal)이었다. 덴마크 비투스의 플래그십 모노블록 파워앰프로 들은 카디널의 소리는 그야말로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였다. 노는 물과 뛰는 리그가 달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다. 

 

이 카디널을 밀어내고 윌슨 베네시의 왕좌를 차지한 주인공이 이번 시청기인 에미넌스(Eminence)다. 지난 2018년 5월 뮌헨 오디오쇼에서 첫선을 보인, 현행 지오메트리(Geometry) 시리즈의 최상위 스피커다. 앞서 말한 인데버(Endeavour)와 디스커버리 2(Discovery II), 그리고 필자가 거의 매주 분당의 한 오디오 숍에서 듣는 레졸루션(Resolution)도 이 지오메트리 시리즈 소속이다. 일단 지오메트리 시리즈 내 스피커 서열과 출시연도부터 정리해봤다.  

 

 

 

지오메트리 라인업

 

Eminence : 2018년. Tactic III 드라이버 첫 선

Cardinal : 2013년

Resolution : 2017년

Endeavour : 2015년

A.C.T.One Evolution : 2015년. 오리지널은 1994년

Discovery II : 2016년. 오리지널은 2001년

Vector : 2011년. Tactic II 드라이버 첫 선. 지오메트리 시리즈의 시작

Vertex : 2011년. Tactic II 드라이버 첫 선. 지오메트리 시리즈의 시작

 

결국 지오메트리 시리즈는 2011년 플로어스탠딩 벡터와 스탠드마운트 버텍스가 등장하면서 시작됐고, 에미넌스는 2018년에 등장해 이 지오메트리 시리즈를 이끄는 기함으로 요약된다. 내친 김에 앞서 윌슨 베네시의 21세기를 열었던 오디세이(Odyssey) 시리즈 계보도 출시연도 순으로 소개한다.

 

Bishop : 1999년. Tactic 드라이버 첫 선

Discovery : 2001년. 오디세이 시리즈의 시작

A.C.T.Two : 2001년

Arc : 2002년

Curve : 2002년

Chimera : 2006년. 비숍을 대체하며 플래그십 등극

 

 

 

에미넌스, 압도적인 외관

 

소리샵 청담매장에서 본 에미넌스는 압도적이었다. 199cm 큰 기에 전면 배플이 28cm에 불과한 늘씬한 몸매가 눈길을 끌고 파란색 메탈 그릴도 좀체 보기 힘든 디자인이다. 앞으로 눌러쓴 베레모를 닮은 인클로저 상판(캡) 역시 윌슨 베네시에서 익히 봐온 패밀리 룩. 안길이는 68cm로 비교적 깊고, 무게는 개당 145kg이나 나간다. 맞다. 윌슨 베네시의 새 플래그십이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 

 

 

씨쓰루 우퍼

 

하지만 역시 파격은 하단 4개 우퍼가 등을 보이고 있다는 것. 유닛의 마그넷과 바스켓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이다. 게다가 밑의 2개 우퍼는 안에 똑같은 사이즈의 우퍼가 마주한 아이소배릭(Isobaric) 구성. 이 역시 저역 품질을 높이기 위해 윌슨 베네시에서 자주 구사하는 수법이다. 그러면 왜 위의 우퍼 2개까지 후면을 노출시켰을까. 이는 밑의 아이소배릭 우퍼들과 사운드와 위상 밸런스, 그리고 타임 얼라인먼트를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 

 

에미넌스에 투입된 유닛은 총 10개. 밑에서부터 따지면, 아이소배릭 구성의 7인치 우퍼가 4개, 낮은 저역(lower bass)을 담당하는 7인치 우퍼가 2개, 7인치 미드레인지가 1개, 1인치 트위터가 1개, 높은 저역(upper bass)을 담당하는 7인치 우퍼가 2개다. 중고역 유닛에 비해 저역 유닛이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이 들지만, 7인치 미드가 풀레인지로 작동하기에 톤이나 음압 밸런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실제 시청에서 확인했다.  

 

 

피보나치 트위터와 상단 유닛들

 

그런데 상단 4개 유닛 진동판 생김새가 예전 택틱 II(Tactic II) 드라이버나 세미스피어(Semisphere) 트위터와는 다르다. 무엇보다 거미줄처럼 생긴 디자인 요소 때문인데, 워낙 파격적인 모습이어서 자칫하면 호불호가 생길 수도 있다. 트위터에는 페이스 플레이트, 3개 유닛에는 더스트 캡에 새 디자인이 보태졌다. 윌슨 베네시에서는 특히 이 페이스 플레이트를 채택한 트위터를 이전 세미스피어 트위터와 구분해 피보나치 트위터(Fibonacci tweeter)라고 부르고 있다. 

 

 

A.C.T 3Zero 모노코크 인클로저 측면

 

인클로저는 윌슨 베네시가 자랑하는 A.C.T(Advanced Composite Technology) 모노코크가 핵심. 고압축 코어를 양쪽에서 카본이 감싼 샌드위치 구조로, 전면 배플과 늘씬하게 빠진 후면은 알루미늄이다. 에미넌스에는 최신 버전이라 할 A.C.T. 3Zero 모노코크를 썼다. 어쨌든 이 모노코크는 1) 강도가 높아 제진효과가 좋고, 2) 두께가 얇아 스피커 내부용적이 겉보기보다 넓어지는 효과를 얻었다. 달리 생각하면 이 A.C.T 모노코크 덕분에 윌슨 베네시의 미끈한 스피커 디자인이 가능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밀폐형 서브챔버

 

 

베이스 리플렉스 포트는 알루미늄 베이스 플레이트 하단에 큼지막하게 나 있는데 이 포트는 아이소배릭 우퍼 4개만을 위한 것이다. 트위터를 포함한 나머지 유닛들은 밀폐형 서브 챔버에 각각 수납됐다. 윌슨 베네시가 에미넌스의 로딩 방식을 밀폐형(sealed)이라고 밝힌 이유다. 각각의 내부용적은 상단 우퍼 2발 챔버가 35리터, 트위터 챔버가 7리터, 미드레인지 챔버가 13리터, 하단 우퍼 2발 챔버가 20리터, 아이소배릭 우퍼 4발 챔버가 21리터다. 

 

스펙 중에서는 24Hz~30kHz(+,-2dB)에 달하는 광대역의 주파수응답특성이 단연 눈길을 끈다. 2.5웨이, 10유닛 구성이지만 크로스오버 주파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어쨌든 피보나치 트위터가 30kHz까지 뻗는 고역대(1웨이), 상단 우퍼 2발이 크로스오버 주파수 이하 전 저역대(2웨이), 하단 우퍼 6발이 이보다 더 낮은 저역대(0.5웨이)를 커버하는 것으로 보인다(7인치 미드레인지는 풀레인지). 공칭 임피던스는 4.5옴, 감도는 89dB를 보인다. 

 

 

 

에미넌스에서 따져볼 5가지

 

윌슨 베네시는 ‘기술과 소재’의 제작사다. 1989년 설립 이래 스피커 유닛 및 인클로저 제작 기술과 소재 개발에 끊임없는 혁신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1991년 세계 최초로 카본 톤암(A.C.T. One)을 사용한 턴테이블을 내놓은 주인공도, 1994년 카본으로 스피커(A.C.T. One)의 곡면 인클로저를 만들어낸 주인공도 윌슨 베네시였다. 1999년 탄생한 택틱(Tactic) 드라이버 역시 영국 정부로부터 25만파운드 지원을 받아 탄생한 첨단 드라이버 디자인이었다. 

 

따라서 에미넌스에는 윌슨 베네시의 이같은 업력이 고스란히 담긴 기술과 소재가 꽤 많다. 이 중 5가지만 간략히 추려봤다. 

 

 

A.C.T 3Zero 모노코크 인클로저 내부구조

 

1. A.C.T(Advanced Composite Technology) 3Zero 모노코크 인클로저

 

2001년 디스커버리 스피커에 처음 채택돼 이제는 윌슨 베네시 스피커의 시그니처가 된 인클로저 설계 방식이 바로 A.C.T. 모노코크다. 말 그대로 ‘첨단 복합 소재의 캐비닛 제작 기술’로 만든 ‘일체형’ 캐비닛인데, 핵심은 양 측면에 샌드위치 카본(카본+고압축 코어+카본), 전후면에 알루미늄을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면 안쪽에는 두께 14mm의 스틸이 버팀목처럼 투입됐다. 에미넌스에는 새 코어를 투입, 기존보다 강도를 30% 향상시킨 최신 버전 A.C.T. 3Zero 모노코크를 썼다. 어쨌든 뒤틀림이 없으면서도 가벼운 강성 소재로 유명한 카본을 인클로저에도 아낌없이 투입, 스피커의 최대 적이라 할 진동 및 공진을 잡으려 한 셈이다.

 

 

피보나치(Fibonacci) 트위터

 

2. 피보나치(Fibonacci) 트위터

 

지금까지 윌슨 베네시 스피커의 고역대를 책임지던 유닛은 2012년에 등장한 세미스피어(Semisphere) 트위터였다. 겉보기에는 진동판 재질로 실크를 쓴 소프트 돔 트위터이지만, 실크 돔 안에 3000가닥의 카본섬유로 짠 또 하나의 진동판이 들어있다. 실크와 카본의 하이브리드 구성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실크 돔을 통해 치찰음이 없는 자연스러운 고역을 확보하고, 카본 섬유를 통해 무려 30kHz까지 플랫하게 뻗는 고역 특성을 얻었다는 것이 윌슨 베네시의 설명이다.

 

이런 세미스피어 돔 트위터가 이번 에미넌스를 통해 피보나치(Fibonacci) 트위터로 진화했다. 사실, 2018년에 나온 에미넌스를 그 이전에 나온 다른 지오메트리 시리즈 스피커와 구분짓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거미줄 모양의 트위터 페이스 플레이트와 미드 및 우퍼에 달린 더스트 캡이다. 윌슨베네시에서는 카본/폴리머 재질의 이 페이스 플레이트가 달린 세미스피어 돔 트위터를 특별히 피보나치 트위터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면 왜 이 복잡한 문양의 페이스 플레이트를 트위터 진동판 둘레에 붙였을까. 이는 트위터가 방사하는 고주파수를 매끄럽게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20kHz 주파수의 경우 파장이 17mm에 불과한데, 트위터 둘레의 웨이브 가이드가 그냥 밋밋한 표면일 경우 온갖 반사음이 난무한다는 것이 윌슨 베네시의 설명이다. 따라서 파장이 매우 짧은 고역대 주파수의 매끄러운 확산을 위해, 자연에서 일어나는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을 응용해 3D 프린팅으로 디자인한 것이 바로 피보나치 웨이브 가이드인 셈이다. 

 

심화학습. 피보나치 수열이란?

 

스피커 리뷰를 하면서 이 정도까지 알아야 하나 싶지만, 카다스 케이블에서도 연선 배치에 피보나치 수열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작정하고 살펴봤다. 피보나치 수열은 0과 1로 시작되는 수열에서 앞의 두 수를 합한 수가 다음 수가 되는 경우다. 즉, 0, 1, 1, 2, 3, 5, 8, 13, 21, 34, 55,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이게 뭐가 대단한가 싶지만, 예를 들어 해바라기 꽃의 씨앗들이 동심원상으로 퍼져나가는 규칙이 바로 이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한다. 자연이 선택한 최적화 배치 기술인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피보나치 수열의 수가 커질수록 자연에서 발견되는 또 하나의 규칙인 ‘황금비율’(Golden Ratio), 즉 1대 1.6180339887…에 가까워진다는 사실. 2:3일 경우에는 1대1.5, 5:8일 경우에는 1.6이지만, 144:233일 경우에는 1.618055555…, 377:233일 경우에는 1.618025751…로 황금비율에 점점 근접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카다스 케이블은 자신들의 연선을 포갤 때 이 황금비율에 맞춰 연선의 직경을 늘려간다.

 

 

Tactic III 드라이버

 

3. Tactic III 드라이버

 

윌슨 베네시가 애정하는 인클로저 재질이 카본이라면, 유닛 진동판은 단연 폴리프로필렌이다. 택틱 드라이버 역시 영국 리드대학과 공동 개발한 이소택틱(Isotactic. 동일배열) 폴리프로필렌 진동판을 채택했다. 따지고 보면 ‘택틱’(Tactic)이라는 말도 이 이소택틱 폴리프로필렌에서 따왔다. 당초 오리지널 택틱 드라이버는 ‘미드레인지와 우퍼용으로 모두 쓸 수 있는 멀티 플레이 유닛’(Tactic Multirole Drive Unit)으로 개발됐고, 이 개발 프로젝트의 코드명이 비숍, 처음 채택된 스피커가 1999년에 나온 비숍이었다.  

 

Tactic I : 1999년 비숍(Bishop) 스피커에 처음 채택

Tactic II : 2011년 벡터(Vector)와 버텍스(Vertex) 스피커에 처음 채택

Tactic III : 2018년 에미넌스(Eminence) 스피커에 처음 채택

 

에미넌스 스피커에 처음 채택된 택틱 III 드라이버는 피보나치(Fibonacci) 디자인의 더스트 캡이 가장 큰 특징. 트위터 웨이브 가이드에서 얻은 효과를 미드와 우퍼 진동판에도 적용시킨 셈이다. 윌슨 베네시에 따르면 피보나치 더스트 캡 채택으로 7인치 미드레인지 유닛의 경우 로우패스 역할을 하는 코일(inductor) 없이도 4kHz에서 정확히 롤오프되는 주파수응답특성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소택틱 폴리프로필렌 진동판의 특성 그래프

 

한편 윌슨 베네시가 이소택틱 구조의 폴리프로필렌 진동판을 고집하는 것은 탁월한 댐핑 능력과 극도로 낮은 공진주파수 때문. 카본 같은 고강성 진동판을 쓸 경우 공진주파수 때문에 크로스오버를 복잡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에미넌스를 비롯해 윌슨 베네시의 미드레인지 유닛들이 대부분 풀레인지 대역을 커버할 수 있는 것도 택틱 드라이버의 이같은 탁월한 물성 덕분이다. 택틱 드라이버는 여기에 마그넷의 자속을 최대로 끄집어내는 곡선 모양의 네오디뮴 마그넷 디자인, 후면파 흐름을 매끄럽게 하는 알루미늄 재질의 유선형 바스켓 디자인을 보탰다.  

 

 

아이소배릭 우퍼 2발

 

4. 아이소배릭(Isobaric) 우퍼 구성

 

아이소배릭 구성은 동일 챔버 안에 마주 보거나 같은 방향을 향한 드라이버 2개를 투입, 주로 저역 재생 품질을 높이는 방식. 에미넌스에서는 7인치 우퍼가 서로 마주 보는 설계를 취했다. 이 경우, 아이소배릭 우퍼들은 1) 진동판과 모터 시스템은 2배로 늘어났지만, 2) 서로 푸시풀(push-pull)로 움직이기 때문에, 3) 후면파로 인한 내부 챔버의 압력이 증가하지 않는 이점이 생긴다.

 

결국 아이소배릭 유닛은 1) 2개의 우퍼가 동일한 압력을 받게 해, 2) 공명주파수를 낮춰, 3) 깊고 풍성하며 단단한 저역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더욱이 이들 우퍼가 미드레인지와 동일한 7인치 직경이어서 음색의 통일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10인치, 12인치 같은 대구경 우퍼는 따라올 수 없는 빠른 스피드는 기본. 참고로 카디널 역시 아이소배릭 우퍼가 2조(총 4개 유닛) 투입됐는데,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다. 

 

 

키네매틱 로케이션

 

5. 모자(cap)와 발(foot)

 

끝으로 살펴볼 것은 모자와 발이다. 스피커 용어로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윌슨 베네시에서도 인클로저 상단을 햇(hat) 또는 캡(cap), 하단 베이스 플레이트를 풋(foot)이라고 부르니 부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어쨌든 에미넌스 실물을 봤을 때 시선을 잡아맨 것은 피보나치 트위터와 씨쓰루 우퍼, 그리고 진짜 베레모처럼 생긴 상단 캡과 큼지막한 하단 플레이트였다. 

 

‘모자’는 뒤로 갈수록 20도 각도를 보이며 높아지는 모습인데 이는 전면 배플의 반사음을 줄이기 위한 윌슨 베네시만의 전매특허다. 재질은 역시 카본. 하여간 윌슨 베네시는 곡면 설계의 인클로저도 그렇고 이 모자 디자인도 그렇고 스피커 내부의 정재파와 외부의 회절 및 반사음을 줄이는데 도가 튼 제작사다. 카디널, 레졸루션, 인데버 모두 이 곡면 모자 디자인을 채택했다. 디스커버리 2의 경우 상판이 경사를 이루긴 하지만 모자는 안씌어 있다. 

 

무게가 38kg이나 나가는 ‘발’은 100kg 솔리드 알루미늄 빌렛에서 CNC 머신으로 7시간 동안 깎아냈다. 그야말로 엄청난 물량투입이지만 폭포수를 닮은 후면 디자인은 보면 볼수록 섬세하고 멋지다. 한편 이 알루미늄 베이스 플레이트는 직경 28mm의 스테인레스 스틸 샤프트가 4점 지지를 하는데, 상단 하우징을 돌려 높이를 세밀히 조절할 수 있다. 

 

하단 하우징에는 1991년 A.C.T.One 톤암에 처음 채택했던 볼 베어링 구조를 응용한 키네매틱 베어링(Kinematic Bearings)이 들어있다. 샤프트 밑에 달린 12.5mm 직경의 볼이 하우징에 있는 똑같은 직경의 3개 볼에 의해 떠받쳐지는 구조. 물론 볼 베어링들의 미세한 움직임에 의해 스피커에서 발생한 진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꿔 소멸시키려는 설계다. 볼 베어링 재질은 모두 스테인레스 스틸이다. 

 

 

 

시청

 

에미넌스 시청에는 독일 T+A의 플래그십 풀시스템이 동원됐다. 플레이어 MP3100HV와 프리앰프 P3000 HV, 모노블록 파워앰프 A3000 HV와 각각의 전원부 PS3000 HV, 이렇게 총 6덩이다. A3000 HV는 8옴에서 380W, 4옴에서 600W를 뿜어낸다. 음원은 룬으로 주로 코부즈 스트리밍 음원을 들었다. 

 

Esa-Pekka Salonen, Oslo Philharmonic Orchestra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Grieg Peer Gynt)

 

에미넌스를 듣게 된다면 첫 곡으로 페르귄트를 들어보리라 평소 생각했었다. 이 곡 특유의 광폭 질주하는 다이내믹 레인지를 어떻게 들려줄지 궁금했던 것이다. 일단 첫 인상은 풋워크가 덩치에 비해 경쾌하다는 것. 그리고 SN비가 워낙 좋아서인지 처음 초저역대 소리가 어디에도 묻히지 않고 들린다. 그러면서 힘까지 쫙 뺀 소리다. 하이엔드 스피커를 시청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점잖은 소리를 들려준다. 과장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음을 들려주는 것. 199cm에 달하는 큰 키 덕분에 무대의 윗공간이 활짝 열린 느낌도 받았다. 

 

다시 볼륨을 높여 들었다. 여전히 부드럽고 편안한 소리다. 놀란 것은 팀파니 소리. 멀리서 다가오는데도 그 스킨의 질감과 다가서는 폼이 여느 스피커들과는 격이 달랐던 것이다. 이어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곧바로 꽝 터지는 오케스트라 폭발음. 스피커를 생물에 비유한다면 이 와중에 숨소리조차 전혀 가빠지지 않는 것 같다. 

 

볼륨을 더 높였다. 소리가 위에서 들리니 상당히 위압적이다. 그러면서 예전 비엔나 무지크페라인 황금홀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음, 전기 노이즈라고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는 그 싱싱한 음이 시청실에서 난무한다. 팀파니는 바닥에 완전 깔려서 돌아다니고, 합창은 ‘이 정도 레벨인가?’ 싶을 만큼 박력 그 자체다. 상당한 음압인데도 해상력은 전혀 무너지지 않는다. 오버해서 표현하면, 에미넌스는 신계에서 온 스피커다. 이런 인상은 지금까지 딱 2번 경험했다. YG어쿠스틱스의 Sonja XV와 포칼의 Grande Utopia EM EVO였다. 

 

Helene Grimaud, Truls Mork ‘Brahms Cello Sonata No.1’(Reflection)

 

이번에는 악기의 질감을 자근자근 맛보고 싶어 엘렌 그리모의 곡을 들었다. 몇년 전 예술의전당 내한공연에서 그녀의 피아노 건반 터치음에 매료됐던 바다. 우선 첼로는 앞쪽 밑에, 피아노는 그 뒤 중간쯤에 위치한 정위감과 실제 덩치를 연상시키는 음상이 대단하다. 노이즈가 휘발된 덕분에 첼리스트가 코로 숨쉬는 소리가 부담스러울 만큼 잘 들리고, 첼로의 저역은 가슴이 벌렁거릴 만큼 필자를 향해 장풍처럼 엄습해왔다. ‘무지막지’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몸에 와닿는 음의 면적 또한 무척 넓다. 특히 첼로의 고음이 상당한 격차를 두고 피아노 위에서 펼쳐지는데 이러한 무대의 높낮이는 하이엔드 스피커의 특권이라 할 만하다. 

 

이쯤에서 어떻게 이런 음과 무대가 펼쳐질 수 있는지 중간점검을 해봤다. 지저분하지 않고 육중한 저역은 하이브리드 인클로저의 공진 제거와 댐핑 효과, 그리고 7인치 아이소배릭 우퍼 2조를 포함한 총 7개 우퍼 덕분이다. 음들이 깨끗하고 담백한 것은 내부정재파를 줄인 곡면 설계와 좁은 배플, 그리고 20도 경사의 곡면 모자 설계, 그리고 볼 베어링으로 지지되는 무거운 베이스 플레이트 덕분이다. 역시 스피커는 아이솔레이션과 댐핑이 처음이자 끝이다. 또하나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고역은 단 하나의 트위터만이 담당하고 있는데도 대역간 톤과 음압 밸런스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는 것. 풀레인지로 작동하는 7인치 미드가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7분40초 무렵부터 작렬하는 피아노의 저역. ‘나도 첼로 못지않게 저역을 낼 수 있다’며 무척 화가 난 듯한 타건이 폭발한다. 놀라고 또 놀랐다. 그러다 첼로와 피아노, 두 악기가 갑자기 음을 끊었을 때는 비행기 착륙 때처럼 필자의 귀가 먹먹해졌다.    

 

Jacintha ‘Moon River’(Autumn Leaves)

 

야신타가 숨을 들이마시자 주위 공기마저 소용돌이를 치며 훅 빨려들어가는 것 같다. 대단한 실체감이다. 확실히 보컬 음이 위에서 들린다. 빅마우스라는 뜻이 아니라, 그녀가 서서 노래를 부른다는 뜻, 그녀의 전신이 다 보인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풀레인지 중역대의 위력이다. 멀티웨이일수록 보컬은 레고블록처럼 쪼개져 결국 진격의 거인처럼 비대해지기 마련이다. 소릿결 자체는 여러번 덧칠한 듯 풍성한 음. 결코 헐벗거나 앙상한 음이 아니다. 이 곡에서도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의 압력이 생생하게 들리는데, 이를 위해 그렇게나 많은 우퍼들을 투입한 것이 아닐까 싶다. 

 

Drake ‘One Dance’(Views)

 

드럼의 탄력감이 장난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렁거리는 고무나 낭창낭창한 트램폴린이 아니라, 자동차 서스펜션처럼 탄탄하고 견고하면서도 승차감이 안락한 그런 탄력이다. 타격감은 마땅한 수식어를 찾을 수 없을 정도. 그냥 여러 개의 거대한 피스톤이 시청실 뒤쪽을 때려박는 듯하다. 남성 보컬이 선명하게 들리는 것은 에미넌스 이 스피커가 펼치는 배경이 기본적으로 딥 블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소위 배경이 ‘브라이트’해서는 이런 선명한 딕션이 나올 수가 없다. 어느새 다음곡 ‘Grammys’까지 듣고 말았는데, 이 곡은 필자가 앉은 소파까지 덜덜 흔들릴 만큼 돌덩이 저역이 터졌다. T+A 앰프가 받쳐준 덕이지만 24Hz까지 플랫하게 떨어지는 에미넌스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램 오브 갓의 ‘Ashes of the Wake’에서는 아예 음들이 바람 소리를 내며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Claudio Abbado, Berliner Philharmoniker ‘Tuba Mirum’(Mozart Requiem)

 

‘애쉬즈 오브 더 웨이크’의 폭풍이 가시자 언제 그랬냐는 듯 ‘투바 미룸’의 잔잔한 수면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말쑥하고 청정한 음, 적막하고 순결한 딥 블랙의 배경이다. 4명의 성악가와 그 앞에 자리한 오케스트라의 높낮이 표현이 역대급이다. 그리고 이들이 펼쳐내는 3D 홀로그래픽 무대 또한 손에 꼽을 만했다. 플라시도 도밍고와 일레나 코트루바스가 부른 ‘축배의 노래’(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바이에른 주립 오케스트라 연주)는 두 남녀와 뒷편 코러스 사이의 원근감이 상당했다. 이 원근감에 관한 한 필자가 꼽는 넘버 원은 FM어쿠스틱스의 플래그십 스피커 XS-1이었고, 넘버 투는 이번 에미넌스다. 

 

 

총평 

 

고백컨대, 스피커를 리뷰하면서 단점 하나 지적질을 못한 것은 이번 에미넌스가 거의 처음이다. 위에서 말한 소냐는 우퍼 타워가 따로 있었고, 그랜드 유토피아는 전자석 우퍼 덕을 톡톡히 봤다. 이에 비해 에미넌스는 단 2개의 패시브 스피커로 이 모든 것을 해냈다. 카디널, 레졸루션, 인데버, 디스커버리 2, 모두 대단한 스피커들이지만, 역시 에미넌스에는 여러 면에서 밀린다. 

 

1년 후, 필자는 이 에미넌스를 어떻게 기억할까. 등을 보인 우퍼 4발, 아이소배릭 우퍼 2조, 이소택틱 폴리프로필렌 드라이버, 피보나치 트위터, 카본을 포함한 하이브리드 모노코크와 모자, 그리고 아이솔레이션 베이스 플레이트와 늘씬하고 큰 키, 145kg에 달하는 육중한 몸무게. 소리는? 그냥 천상의 소리였다고, 좀체 듣기 힘든 소리였다고 기억할 것이다. 대단한 브랜드의 대단한 스피커라고 생각한다.   

 

2020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