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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리뷰 감독판

1. Avid Diva II : 기계공학의 아름다움, 소리의 즐거움

 

Diva II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턴테이블은 기계공학의 결정체다. 섀시의 경우 진동을 최소화해야 LP 그루브에 담긴 음악신호를 카트리지가 정확히 읽어들일 수 있다. 여기에 플래터의 안정적인 회전과 이를 위한 모터의 일정한 토크, 거의 무중력 상태에서 그루브를 추적할 수 있는 톤암의 트래킹 능력도 필수다. 이 모든 게 기계공학 영역이다. 이것부터가 전기전자공학이 메인인 디지털 소스기기와 다른 것이다. 

이번 시청기인 영국 아비드(Avid)의 Diav II 턴테이블은 이런 기계공학적 아름다움과 신뢰성, 이를 통해 아날로그 음원을 듣는 즐거움을 듬뿍 맛볼 수 있었던 수작이다. 자택에서 쓰는 턴테이블과 달리 MDF나 아크릴이 보이지 않는 점도 새끈한 기계를 보는 맛을 더했다. 섀시 타입이 리지드인지 서스페션인지, 플래터 구동이 벨트 드라이브인지 다이렉트 드라이브인지, 톤암이 스태틱 밸런스인지 다이내믹 밸런스인지, 모터가 AC인지 DC인지는 어쩌면 그 다음 문제였는지 모른다. 

Diva II, 리지드 알루미늄 섀시+벨트 드라이브+AC모터+소보텐 풋+별도 리니어 전원+알루미늄 플래터+코르크 매트+레가 특주 톤암+이그잭트 MM카트리지(옵션)

일부 오디오 리뷰에서 아쉬운 점은 기본 팩트 취재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필자 리뷰가 100% 정확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기본 팩트 체크는 누가 뭐래도 정확해야 한다. Diva II 리뷰를 위해 국내외 여러 리뷰를 읽다가 엉터리 팩트에 귀중한 시간만 뺏겼다. 그 중 대부분은 Diva II를 리뷰하면서 이보다 더 비싼 모델인 Diva II SP 스펙과 설계디자인을 들이민 것들이었다. 심지어 다른 사진을 쓴 리뷰도 있었다. 오리지널 Diva는 2003년, Diva II는 2008년, Diva II SP는 2009년에 나왔다. 

Diva II는 3점으로 지지되는 무게 12kg의 리지드 타입 턴테이블. 리니어 전원부는 별도 섀시에 마련됐다. 무게 5.5kg의 알루미늄 플래터를 들어올려 보면 역시 두터운 알루미늄 주물로 된 메인 섀시가 보인다. 안쪽이 깔때기처럼 접힌 삼각형 섀시인데, 한쪽 면에 톤암 보드가 바깥으로 나와 있다. 이 모든 게 일체형, 즉 원피스로 돼 있다. 개인적으로 턴테이블의 이런 섀시 디자인은 처음 본다. 심플하면서도 단단해 보인다. 3개 둥근 지지대(풋) 안에는 플래터 진동 흡수 및 바닥진동 차단을 위해 소보텐(Sorbothane)이라는 고탄성 폴리우레탄 고무가 3중으로 들어있다. 

Diva II는 또한 벨트 드라이브 방식이다. 섀시와 분리된 24V 싱크로노스 AC모터가 둥근 고무벨트로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서브 플래터를 돌린다. 겉에서는 안보이지만 플래터를 들어올려 보면 섀시 정중앙에 보다 작은 크기의 스핀들/베어링 일체형 서브 플래터가 놓여있다. 플래터는 자체 무게도 있지만 서브 플래터에 난 4개 구멍에 자신의 4개 돌출 나사가 삽입돼 안정적으로 밀착된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묵직한 스테인리스 스틸 하우징에 담긴 모터가 섀시를 파고들어갔을 정도로 바싹 붙어 있는 점. 때문에 벨트가 무척 짧다. 모터 위의 풀리(pulley)는 위아래 직경이 다른데, 예상대로 작은 직경이 33.3회전용, 아래 큰 직경이 45회전용이다. 회전 속도를 조절하려면 벨트를 위아래로 움직여야 한다. 

서브 플래터 가운데에는 아비드에서 ‘드라이브 허브’(drive hub)라고 부르는 스핀들 및 베어링이 있다. 한마디로 플래터의 회전축이다. 우선 스핀들 끝이 나사모양이다. 이는 기본 제공되는 클램프를 체결하기 위한 것이다. 뚜껑이 브라스 재질인 허브 하우징 안에는 섀시와 고정된 스핀들 샤프트가 있고 그 위에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 놓여 있다. 결국 드라이브 허브와 맞닿는 유일한 접점은 바로 이 볼 베어링인 것이다. 그리고 이 볼과 직접 맞닿는 하우징 안쪽(thrust point)에는 텅스텐 카바이드/사파이어 패드가 붙어있다. 

알루미늄 플래터 위에 코르크 매트가 붙어있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코르크는 펠트처럼 소프트하고 공기 함유량이 많지만 일정 두께를 유지할 수 있어 플래터 진동이 LP로 넘어가는 것을 보다 잘 막아준다. 반대로 LP와 플래터로 전해지는 카트리지의 진동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계공학에서 말하는 ‘메커니컬 임피던스 미스매치’(mechanical impedance miss-match)다. 매트(코르크)와 LP(합성수지)의 기계적 저항치, 즉 외부 에너지에 대한 반발력을 서로 달리해(미스매치) 쓸데없는 진동이 플래터로 넘어가는 것을 막아준다는 얘기다. 

한편 Diva II SP는 겉보기에는 Diva II와 비슷해 보이지만 별도 전원부에서 회전속도를 DSP로 조절할 수 있는 점부터가 다르다. 이밖에 서브 플래터가 사라진 점, 싱글벨트가 아니라 트윈벨트가 플래터를 직접 돌리는 점, 플래터 무게가 6.3kg으로 늘어난 점도 다르다. 플래터를 벗겨보면 플래터 밑바닥에 트윈벨트와 맞닿는 작은 원반이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섀시 가운데에 노출된 회전축 디자인도 Diva II와는 다르게 생겼다. 

톤암과 카트리지

아비드 Diva II 톤암보드는 길게 파인 홈을 보면 짐작할 수 있듯이 기본적으로 SME 톤암 장착을 상정해 설계됐다. 하지만 어댑터를 통해 다른 톤암을 장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시청 모델에는 레가 특주 톤암이 어댑터와 함께 장착돼 있었다. 이 톤암은 기본적으로 스프링의 힘으로 침압을 줘서 소릿골 추적 능력이 좋은 다이내믹 밸런스 방식을 채택했다. 톤암 뒤쪽의 밸런스 웨이트(무게추)로 수평을 잡은 후 우측 다이얼을 돌려 정밀한 카트리지 침압 조정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일체형 헤드쉘 끝에는 레가의 노란색 Exact MM카트리지가 옵션으로 장착됐다. 레가의 최상위 MM카트리지다. MM카트리지는 잘 아시는 대로 스타일러스를 통해 읽어들인 진동(운동) 에너지가 마그넷을 움직이고(Moving Magnet) 이 움직임이 코일로 전해져 전기에너지로 변환된다. 때문에 코일이 움직이는(Moving Coil) MC카트리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출력전압을 얻을 수 있다. 이그잭트의 경우 6.8~7.2mV라는 고출력을 낸다. 캔틸레버 끝에는 다이아몬드 팁이 달렸다. 적정 침압은 1.75g. 

셋업 및 시청

시청에는 미국 벨칸토(Bel Canto)의 최상위 Black System(블랙 시스템)과 독일 오디오벡터(Audiovector)의 플래그십 스피커 R8 Arrete(아르테)를 동원했다. 블랙 시스템은 벨칸토에서 비동기 시스템 컨트롤러(네트워크 트랜스포트 겸 프리앰프)라고 부르는 ASC2와 모노파워스트림(모노블록 파워앰프)이라고 부르는 MPS1 조합이다. ASC2에 MM/MC 포노스테이지가 들어있는데 일단 ADC(24/192)를 통해 디지털 신호로 바꿔준 다음, MPS1에 있는 DAC(PCM1702. 24/192)으로 다시 컨버팅하는 점이 독특하다. DSP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도다. 내장 포노스테이지의 경우 카트리지 출력전압에 맞춰 5.0mV(40dB/MM), 2.5mV(46dB/MM), 0.5mV(60dB/MC), 0.25mV(66dB/MC) 중에서, 부하 임피던스는 47k옴(MM), 1000옴, 500옴, 100옴, 50옴(이상 MC) 중에서 고를 수 있다. 시청 시에는 5.0mV, 47k옴으로 세팅했다. 

Antonio Forcione Quartet ‘Heartbeat’(In Concert)

무게 12kg의 묵직한 턴테이블이지만 카트리지를 LP에 올려놓는 기분은 거의 무중력 유영이다. 그만큼 톤암세팅이 잘 돼 있다는 반증이다. 재생음의 첫 느낌은 무대와 각 악기들이 홀로그래픽하게 등장한다는 것. 처음 들리는 기타 음이 그냥 허공에 붕 떠올랐다. 음 안에 또 음이 있는 것처럼 배음이 풍부하며, 기타줄이 끊어질 듯한 강력한 파워도 눈에 띈다. 안길이가 깊숙한 점, 배경이 적막한 점, 음의 표면이 매끄러운 점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음이 필자에게 와 닿는 촉감이 탈수기로 노이즈와 기름기를 완전 탈탈 털어낸 듯했다. 전체적으로 잡스러운 진동이 사라진 담백하고 깨끗한 음이라는 인상. 일체형 알루미늄 섀시, 소보텐 탄성체 풋, 드라이브 허브 및 서브 플래터의 안정적 회전, 코르크 매트 등이 협공해준 덕이다. 끝에 박수 소리만 없었으면 다른 사람에게 스튜디오 녹음이라고 해도 될 만큼 SNR이 높다. 2번 트랙 ‘Tears of Joy’에서는 첼로 음이 잘 들렸는데 그야말로 아카데믹하게 녹음이 잘 된 LP임을 절감했다. 연주 시에 떠돌았을 공기감까지 정보에 다 담은 것 같다. 디지털 소스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진 음의 무게감도 좋았다. 

Eiji Oue, Minnesota Orchestra ‘Pines of Rome’(Respighi)

1번 트랙 ‘The Pines of the Villa Borghese’를 들어보면 새까만 배경에 울려퍼지는 배음이 상당하다. 딸림음의 음수가 디지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빽빽하고 많다. 제한된 두께에서 그루브를 파내야 하는 LP의 속성상 다이내믹 레인지가 좁을 수밖에 없는데도 체감상 다이내믹 레인지의 갑갑함이나 한계는 느끼지 못했다. 특히 여리고 조용한 음이 어떤 경우에도 파묻히지 않는 점에 감탄했다. 벨칸토 내장 포노스테이지가 RIAA 커브 보정을 제대로, 그것도 디지털로 잘 수행한 덕도 크게 봤겠지만 톤암과 카트리지의 트래킹 능력과 Diva II 플래터의 안정적 회전, 그리고 온갖 제진대책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2번 트랙 ‘The Pines Near A Catacomb’에서는 앞뒤 악기의 레이어감을 쌓아가는 방식이 디지털과는 확연히 다르다. 디지털이 ‘스르륵’ 이라면, 아날로그는 ‘차곡차곡’이다. 포크레인으로 시청실 바닥을 푹 파낸 것처럼 악기들이 밑으로 쑥 내려가 있는 점도 대단했다. B면 4번 트랙 ‘Orgiastic Dance’(Belkis, Queen of Sheba)에서는 음들이 맞바람이나 아무런 저항없이 순풍순풍 질주하는 느낌. 그러면서도 가지런히 잘 정리된 음들이 뛰쳐나온다. 음이 갑자기 사라질 때의 먹먹함도 도드라졌다.

Robert Wolf, Fany Kammerlander ‘Our Spanish Love Song’(Faro)

찰리 헤이든 원곡을 완전 새롭게 편곡한 A면 1번 트랙 ‘Our Spanish Love Song’을 듣자마자 기분까지 좋아졌다. 마치 파블로카잘스의 연주처럼 페니카머랜더의 첼로가 바닥에 잘 꽂히는 맛이 으뜸이고, 이어 접사로 음들 하나하나를 관찰하는데 그 알갱이 모두가 굵고 분명하며 선연한 점이 두번째 매력이다. ‘입자감이 곱다’, 이런 수준을 뛰어넘었다. Diva II는 LP에 담긴 소릿결을 있는 그대로 들려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클리어 오디오처럼 깨끗하고 선명하게, 레가처럼 약간은 온기있고정감있게, 크로노스처럼 아주 디테일하게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타입이 아니다. B면의 2번 트랙 ‘Cinema Paradiso’는 첼로의 볼륨감이 대단한데 이는 출력전압이 높은 MM카트리지의 개성일 것이다. 단단하고 두꺼운 음, 그런데도 그 표면이 매끄럽고 윤기가 나는 음이다. 이어 스탄 게츠의‘Big Band Bossa Nova’ LP에서 ‘Manha De Carnival’도 들어봤는데, 별의별 소리가 모두 들리는 해상력이 돋보였다. 음이 보드랍고 싱싱하게 느껴진 점도 주목할 만했다. 

총평

Diva II 턴테이블의 플래터를 들어올려 속살을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섀시 구조가 훤히 다 보였던 것이다. 아비드에서‘플린스’(plinth)라는 용어 대신 ‘섀시’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심플한 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외관은 이처럼 심플하지만 알루미늄 주물을 원피스로 성형한 덕에 진동제어를 위한 첫 단추는 더할 나위 없이 잘 꿰어졌다. Diva II를 시청하는 내내 단정하고 차분하며 정숙도가 높은 음이라고 느낀 첫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이밖에 어댑터를 통해 다양한 톤암을 얹힐 수 있는 점, 양방향 진동흡수가 장점인 코르크 매트가 붙박이로 붙어있는 점도 매력이다. 곳곳에 깃든 기계공학에 매료되고, 들려준 아날로그 소리에 감탄한 턴테이블이었다. 

 

2019년 7월